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베이 말름스틴 (문단 편집) == 유년 시절 == 최초로 락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건 TV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았을 때라고 하며,[* 정확히는 지미 핸드릭스의 부고를 알리는 방송이었고, 연주 장면은 그의 자료화면이었다.] 나중에 "7살 때 지미 헨드릭스가 죽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지미 헨드릭스가 죽은 그날,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이 태어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UdsfyrYII|당시 영상.]] 1970년이라 그런지 화질이 좋지 않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헨드릭스의 영향에 대해 지겹도록 질문을 받을 때 마찬가지로 지겹도록 똑같은 답을 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건 분명히 헨드릭스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 당시 어린 잉베이가 보았던 것은 이빨로 연주하고 기타에 불지르는 영상이었다. 잉베이도 공연에서 이따금씩 이빨 피킹을 선보이기도 한다.] 헨드릭스 본인의 연주나 음악적인 성향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 헨드릭스는 분명히 블루스, R&B에 강한 베이스를 둔 기타리스트이다. 하지만 잉베이의 곡 중에 나오는 돌출적인 비브라토나 클라이맥스로 이끌어가는 방식은 분명 지미 핸드릭스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근데 지미 헨드릭스 영향을 간접적으로라도 안받은 일렉트릭 기타리스트가 있나?-- Far beyond the Sun에서 클라이맥스 부분을 잘 들어보라. 단순히 장르의 구분을 가지고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말하긴 어렵다. 또한 그는 자서전 [Relentless]에서 락 뮤직에 대해 가장 먼저 듣고 빠져있던 건 다름아닌 [[딥 퍼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7세 때 지미 헨드릭스에 충격을 먹고 8살 생일에 선물로 받은 딥 퍼플의 앨범 [[Fireball]]이 인생 첫 LP였고 잉베이는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딥 퍼플 앨범 중에서도 최고로 치고 있다. 1979년 잉베이는 밴드를 만들기로 하며 멤버를 모집하게 되는데 이때 Marcel Jacob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꽤나 같이 붙어있게 된다. 잉베이에 따르면 당시 Marcel은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하게끔 연습을 시키고 또 같이 곡작업 등도 많이 했다고 한다. 80년 이후 둘은 헤어지게 되었고 Marcel은 스웨덴의 또 다른 위대한 락 밴드 [[Europe(밴드)]]의 원조 멤버가 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잉베이에 따르면 Marcel은 무책임하고 자기 멋대로여서 2집 Triology 투어 도중 그냥 무단 이탈을 해버렸는데 이때 잉베이의 집에 들러서 장비며 녹음했던 테입이며 죄 가지고 스웨덴으로 튀었다고 한다. 이후 Marcel은 [[제프 스캇 소토]]와 Talisman을 함께하며 이후 96년 잉베이의 앨범 Inspiration 제작 때 다시금 만나게 되었는데 결국 이때도 비슷하게 행동해 이후 잉베이는 손절했다고 한다. 말름스틴은 록에서는 [[리치 블랙모어]][* [[리치 블랙모어]]는 지미 헨드릭스에게 동시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기타리스트이므로, 리치 블랙모어의 직계 후계자를 자처하는 잉베이 또한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와 울리 존 로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네오크래시컬 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은 리치 블랙모어는 아니라고 한다.[* "I still adore him(Richie Blackmore)...... but my classical style of playing.......didn't come from him" "오히려 클래식컬한 영향은 [[제네시스(밴드)|제네시스]]가 더 컸다." -Relentless-] 그는 키보드가 클래시컬한 어프로치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밝히며 그 이유로 "기타나 바이올린 기타 현악기는 노트 하나를 연주 하는데 양손이 필요하지만 키보드는 한 손만으로도 가능하며 때문에 속주도 키보드가 더 편하다."라고 밝혔으며 특히 [[제네시스(밴드)|제네시스]]의 [[토니 뱅크스]]가 이런 이유로 오히려 클래식컬한 어프로치에 더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클래식에서는 [[바흐]], [[파가니니]], [[안토니오 비발디]]에게 영향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특히 바로크 메탈의 토대를 마련해준 [[리치 블랙모어]]에 대해서는 무한한 존경심을 보낸다. 데뷔 초에는 [[리치 블랙모어]]의 헤어스타일, 의상, 무대 퍼포먼스까지 모두 그대로 따라할 정도 였고, 96년 발매한 Inspiration 앨범 트랙 10곡 중 5곡이 [[리치 블랙모어]]의 곡이다.[* 정작 리치 블랙모어는 잉베이를 평가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항상 나에게 공손하고 예의를 표하고 나도 그가 인간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나의 추종자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고 그다운 대답을 하였다.] 리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인지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 출신 보컬들과 다 같이 밴드 혹은 프로젝트를 하였다. 대표적으로 알카트라즈 시절 땐 레인보우 2대 보컬인 그레이엄 보넷, 개인 밴드 라이징 포스의 보컬은 조 린 터너, 그리고 프로젝트로는 로니 제임스 디오과 같이 작업을 했었다. [[파일:external/i48.photobucket.com/DEEPPURPLE3.jpg]] 리치 와 잉베이 이미 10살 때부터 Track On Earth란 밴드를 하기도 하며, 클래식 연주법에 대한 관심도 일찍 시작되어, 특히 속주로 유명했던 19세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곡을 기타로 많이 카피했다고 한다.[* 바이올린 역시 주니어 콩쿠르에 나갈 정도로 연습했었다. 그러나 입상 경력은 없음.] 이 시절 활동하던 아마추어 밴드의 이름 중에 훗날 [[재활용]]되는 Rising Force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